
저출산은 국가 존립의 문제라고 말한다.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도 한목소리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외친다.
세금은 수조 원이 투입되고, 대책은 매년 쏟아진다. 그런데 정작 난임치료를 받는 당사자 앞에 놓인 제도는 묻는다. “연봉이 얼마입니까?”
난임치료비는 여전히 세액공제 틀 안에 있다. 세액공제는 기본적으로 ‘낼 세금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연봉 3천만 원 수준의 저소득 근로자는 각종 공제를 적용하면 실제 납부세액이 거의 없다.
이 경우 난임치료비를 수천만 원 지출해도 깎을 세금이 없으니 공제 효과도 없다. 결과적으로 지원은 0에 수렴한다.
반대로 연봉 7천만 원 가구가 2천만 원을 치료비로 써도 체감(200백미만)은 기대에 못 미친다.
총급여의 일정 비율을 초과한 금액만 공제 대상이 되고, 그 금액의 일부만 세금에서 차감된다.
수천만 원을 선지출했는데 환급은 일부에 그친다. 출산을 국가적 과제라고 말하는 정책의 무게에 비해, 개인이 떠안는 부담은 여전히 크다.
이 구조는 이상하다.
출산은 사회적 가치라고 하면서, 지원은 조세 형평성 논리 안에 가둬두었다.
난임치료를 일반 의료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순간, 정책의 철학은 흔들린다.
난임은 단순한 개인 의료 소비가 아니다. 인구 구조와 직결된 영역이다.
그렇다면 지원 역시 세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 정책의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현재 구조를 냉정하게 보면 사각지대가 분명하다.
저소득층은 세금이 적어 공제 효과가 없고,
중산층은 세금을 내지만 체감이 낮고,
고소득층은 상대적으로 더 큰 절대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절실함은 소득 구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원 체계는 소득 구간에 따라 갈린다.
이 간극이 정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는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고 말한다. 맞다. 과거보다 진전은 있었다.
그러나 반복 시술, 추가 검사, 약값, 휴직에 따른 소득 감소까지 합산하면 개인이 감당해야 할 총비용은 여전히 막대하다.
“지원은 하고 있다”는 행정적 설명과 “버티기 어렵다”는 현장의 체감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출산을 장려하겠다면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얼마를 버는가”가 아니라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로.
난임치료를 세액공제에 묶어두는 한, 정책은 근본적으로 소극적이다.
세금 일부를 덜 걷는 방식은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나중에 되돌려주는 방식일 뿐이다.
그것도 세금을 낼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저출산을 국가 위기라고 규정하면서, 그 출발점에 있는 난임 문제를 조세 구조 안에만 가두는 것은 정책의 자기모순이다.
출산을 공공의 과제로 본다면, 난임치료 역시 공공이 선제적으로 부담해야 할 영역이다. 정액 지원, 선지원 후정산 구조, 소득과 무관한 최소 보장 장치 같은 논의가 빠진 대책은 결국 선언에 그친다.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과정의 비용을 함께 나누는 설계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저출산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말해왔다면, 이제 그 구조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세금 계산 방식이 아니라, 책임의 방식부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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