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회는 끊임없이 묻는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그러나 정작 그 질문을 사회 자신에게는 던지지 않는다.
결혼 적령기는 자연스럽게 늦어졌다. 주거, 일자리, 소득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 결과 난임은 개인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위험이 되었지만, 사회는 여전히 난임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변수로 남겨둔다.
지원금이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체감되는 비용은 연간 수천만 원에 이른다. 아이를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의 비용과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한다면, 그것은 장려가 아니라 시험이다.
정책의 모순은 연말정산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난임을 질병이라 인정하면서도 공제는 연봉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마치 소득이 높으면 덜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더 감당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는 듯이 말이다.
난임은 건강의 문제인데, 제도는 이를 세금 계산의 문제로 처리한다. 이 순간 정책은 복지가 아니라 회계가 된다.
지자체로 내려오면 상황은 더 비어 있다.
임신·출산은 가장 생활 가까운 영역인데, 정작 지역 차원의 실질 정책은 거의 없다.
병원 접근성, 이동, 돌봄, 회복 기간, 일상의 유지 같은 문제는 정부의 구호로 해결되지 않고
지자체는 예산을 이유로 책임을 미루고, 출산 축하금이나 캠페인으로 역할을 대신한다.
그래서 지금의 선택 구조는 명확하다.
결혼하지 않으면 잃을 것이 거의 없고,
결혼하면 책임이 늘어나며,
출산하면 구조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 계산은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놓은 합리적 판단의 결과다.
사람들이 아이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기엔 사회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선택했을 뿐이다.
출산을 국가 과제라 말하려면,
그 과정의 실패와 비용, 불확실성 역시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낳아라”라는 말은 권유가 아니라 무책임한 주문에 불과하다.
지금 이 사회의 문제는 출산율이 아니다.
말과 구조가 완전히 어긋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오늘의 저출산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결과다.
사람들은 가족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계산기를 먼저 꺼내 들게 만드는 구조 앞에서,
삶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출산을 원한다면 용기를 요구할 게 아니라 책임을 나눠야 한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태어나지 않은 아이보다 더 먼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는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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