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동산 논쟁은 언제나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라는 익숙한 구호 속에서 회전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의 시장은 단순한 사실을 반복해 보여줬다. 정부가 어떤 장치를 동원하더라도 가격은 필요하면 오르고, 내려와야 할 때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구조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 변수는 보유 비용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공급을 늘리고 청년·무주택자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하지만, 시장은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수요가 이미 급감했고, 현금이 여유로운 자본과 공기업만이 움직이는 경직된 시장이 고착됐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장기 공급이나 단기 규제 조정보다 보유세 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핵심축이 된다.
공급 논쟁은 언제나 실체보다 이미지가 앞선다. 공급은 필요하지만 가격 조절 장치로서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계획은 대대적으로 발표되지만 실제 입주는 5~10년 뒤에나 이뤄지고, 그 사이 시장은 금리·경기·인구 구조라는 더 강한 변수들에 의해 좌우된다. 정부가 공급을 늘린다고 해도 입지, 상품성, 실제 수요, 자본 여력이라는 조건이 맞지 않으면 가격 안정은 오지 않는다. 지금처럼 수요가 바닥난 국면에서 공급을 시장 안정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문제의 본질은 조세 구조가 잘못 설계될 때 시장이 자본력의 순서로 갈린다는 점이다. 현재 시장은 현금이 많은 집단만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변했다. 이때 거래 기반 세제보다 보유 기반 세제가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래세는 사고파는 행위 자체를 위축시켜 시장 순환을 막고, 양도세는 다주택자의 매물을 묶어두며, 낮은 보유세는 자산가가 거의 비용 없이 장기간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 결과 현금이 있는 사람은 사두고 버티는 전략을 취하고, 실수요자는 점점 더 불리해지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보유세의 기능은 흔히 오해되듯 ‘징벌’이 아니라 ‘순환’에 있다. 선진국이 높은 보유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보유 비용이 높아야 비효율적 보유가 줄고, 매물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며, 공급 계획이 시장 심리를 과도하게 흔들지 않고, 자본이 소수 집단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유세는 시장을 억압하는 장치가 아니라 시장이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구조적 장치다.
한국의 보유세는 겉으로는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낮다. 정치권에서는 ‘보유세 폭탄’을 반복적으로 언급하지만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보면 OECD 평균보다 여전히 낮다. 공정시장가액 비율 조정, 공시가격 현실화율 후퇴, 고가·다주택 구간의 누진 약화 등으로 인해 자산가의 실질 보유 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보유세가 약하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버티면 오른다’는 믿음이 더욱 강화된다. 이 심리가 깨지지 않는 한 어떤 공급 확대도 가격을 움직일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가장 부작용이 적고 시장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조합은 보유세 강화, 거래세 인하, 장기 공공임대 공급의 3요소다. 보유세는 장기 보유의 기회비용을 높이고, 낮은 거래세는 실수요와 이동 수요가 자연스럽게 순환하도록 돕고, 공공임대는 시장 가격 안정의 하단을 지지한다. 지금 정치권이 외치는 공급 확대는 이 중 한 축만 강조하는 반쪽짜리 해법에 불과하다. 공급은 필요하지만 시장 심리를 결정짓는 중심 변수는 결국 보유 비용이다.
보유세 정상화는 정쟁이 아니라 시장의 기초 체력에 관한 문제다. 자산 집중 완화, 비효율적 보유 해소, 거래 활성화, 주거 안정성 확보, 공공주거 재원 마련이라는 효과를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책은 보유세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부동산 논쟁을 관통하는 핵심 문장은 하나다. 보유 비용이 낮으면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그 핵심을 회피해 왔고, 그래서 공급도 규제도 대출 완화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답은 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보유세 정상화 없이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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