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동산 세제 논의가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여야의 공방을 들여다보면 정책의 방향보다 표 계산이 앞서 있다. 보유세는 국민의 삶을 바꾸는 구조적 문제임에도, 정작 국회 안에서는 여전히 ‘누가 손해 보느냐’를 둘러싼 이해 싸움으로 소비되고 있다.
현재 주택 보유세 실효세율은 0.08%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다. 반면 양도소득세는 다주택자 기준 최대 50%를 넘어 거래세 부담이 과도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집을 팔기보다 쥐고 있는 게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매물은 잠기고, 시장 유동성은 줄며, 집값은 다시 상승한다.
특히 형평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50억 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지만, 5억 원대 아파트 세 채를 가진 사람은 종부세와 재산세를 수천만 원 부담한다. 자산 총액으로 보면 전자가 훨씬 부유하지만, 세법상 후자만 ‘세금 대상자’가 된다. 이는 부동산을 통한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고착시키는 구조다.
보유세 강화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기본 장치다. 그러나 문제는 세율이 아니라 방향이다. 실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은 완화하고, 투기성·비거주성 자산에는 실질적 세율을 높이는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세금은 처벌이 아니라 사회적 균형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논의가 정치적 계산 속에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은 “세금폭탄”을 내세워 다주택자의 부담을 줄이려 하고, 야당은 “부자감세” 프레임에 갇혀 구조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삶보다 정당의 이해가 앞서 있는 셈이다.
정책을 설계하는 공직자들의 태도도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재산공개 자료를 보면,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부동산 자산을 통해 재산을 축적했다. 개발 예정지 주변 토지, 임대수익형 건물, 다주택 보유 등 정책 결정권자가 ‘시장 참여자’로 얽혀 있는 구조에서는 공정한 세제 개편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유세 개편은 세율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 정의의 문제다. “누가 세금을 내느냐”보다 “누가 세금을 내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세 50억 원 거주자도, 다주택 보유자도, 공직자도 자산 규모에 따라 공평하게 부담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정치가 조세 정의를 외면한 채 표 계산에 매달린다면, 부동산 불평등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이제는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이해가 아닌 원칙으로 부동산 세제를 다시 세워야 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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